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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태우(南泰祐, 1880-1937)는 1880년에 출생하였고 주소지는 사성리 209번지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4·4 독립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 하였다. 그는 천의시장에서 경찰관 주재소 및 정미면 사무소에 이르러 만 세를 부른뒤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려 하여 시장에서 약 5간정도 왔는데 당진경찰서의 순사가 와서 태극기를 강제로 탈취하고자 하여 권총을 발사 하려고 하자‘어찌하여 우리 일을 막으려 하느냐’하며 결판을 내야한다고 모두 순사를 포위하니 순사가 도주하였다. 이에 그는 사람들과 함께 돌을 던졌다. 그 때 주재소 앞 도로에서 순사보 이재영을 만나‘너는 당진의 순 사가 아니냐’하며 오른손으로 이재영의 손목을 끌어당기니 그는 묵묵히 서있었다. 이에 다시 한번 힘을 들여 끌어당겼으며 약 5간정도 거리의 주 재소 건물에 계란 크기의 돌을 던졌다. 그 후 왜경에게 정치범 처벌법령 위 반, 소요, 강도죄로 체포되어 그 해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 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였고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었다. 정부에서는 198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고 1990년 건국훈 장 애족장이 다시 추서되었다. 남용우(南容祐, 1890-1965)는 1890년 출생하였고 주소는 도이리 174번 지이다. 4·4 독립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천의 시장에 서 시위 후에 오후 3시반 경 돌아오기 위하여 천의리와 승산리 경계의 도 로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군중들한테 천의주재소터 순사들이 도망가는 것 을 보고 그도 함께 뒤를 따라가 주재소까지 갔다. 그는 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하게 투쟁하였다. 그는 왜경에 의해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체포 되어 5월 14일 구류되었다. 그 해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 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다시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