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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근처에서부터 돌을 던지기 시작함으로 그도 돌을 주워 천의주재소의 남쪽 문짝을 향하여 투석을 하였고 주재소 앞 10간 정도 떨어진 도로에서 대강 어른의 주먹크기의 돌을 오른편 손으로 한번 던졌더니 주재소의 사무실 앞 면 유리 장지문에 맞아 부서졌다. 그 후 왜경에 의해 보안법 위반 및 소요 죄로 체포되어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2월 24일 기각되어 징역 1년형이 확정 되었다. 그는 일제의 악독한 고문으로 좌우측 손가락 4개를 봉합하는 장애 를 당했으며, 여생을 불구로 갖은 고생을 다하였다. 1932년 향년 47세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86년 대통령 표창을 , 1990 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춘응(李春應, 1890-1954)은 두산리 출신으로, 직업은 농업이다. 30 세의 나이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왜경에 의해 보안법위반과 소요죄로 체포되어 4월 23일 구류되었다. 5월 13일 기소되어 10월 24일 공주지방 법원에서 징역1년형을 선고받았다. 즉각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86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대하(李大夏, 1890-1950)는 장정리 출신이다. 직업은 저축조합 서기 였다. 천도교에 입문하여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중 대호지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인정 면장이 그의 백부이다. 그 역시 천의 시장에서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왜경 에 체포된 그는 4월 23일자로 구류되었다.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과 벌금 30원, 그리고 노역 30일을 선고받았다. 그는 즉각 항 소하여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 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사성 이대하 애국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