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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 남상집의 동생인 남상혁(南相赫, 1895-1969, 호 : 克齋) 역시 만세시위 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지 체포 를 면하여 형을 받지는 않았다. 이들 모 두 도호의숙 설립을 주도했던 남보영의 손자들이다. 남상혁은 홍주의병장 지산 (志山) 김복한(金福漢)의 가르침을 받았 다. 김복한은 1895-6년간 홍주의병을 일으켜 옥고를 치르고, 1919년 파리장 서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민족지 사이다. 남상혁의 아들인 남경우(南庚 祐)가 부친의 일기를 토대로 아래와 같은 b신고서c를 작성하였다. 삼일운동 시에 부친께서는 유학(留學)으로 홍성의 거유 지산 김복한 선생 문하에 수학하시던 중이었답니다. 홍성은 서산군 대호지면보다 먼저 거사 준비를 지산선생 주도하에 진행하면서 문하생 남상혁에게 너는 고향에 가 서 어른들과 기미 의거를 일으키라는 연락을 하고 그곳에서 일을 하라고 지시하시어 그 밤으로 대호지에 오셨다고 하시며 할아버지(軫字 熙字)께 엿줍고 사성리 남 병사 댁에 가서 연락을 하셨답니다. 그 당시에는 망국의 한을 품고 어른들께서 사성리 발궐의 남 병사 댁에 모이셔서 걱정들 하시 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성리에 가서 남계창, 남주원, 남상집 어른들께 지 산선생님의 뜻을 말씀드렸으며 그 즉시 거사를 준비했답니다. 36) 남상집 애국지사 36) 남경우, 「 신고서」, 『극재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