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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부안 김씨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마의태자 20세 손인 김일과 그 의 아들로 한성판윤을 지낸 김봉수(金鳳壽)가 당진에 낙향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소감공(小監公) 김광신(金光信)의 후손이기에 소감공파 라고 부른다. 이들은 주로 관리를 많이 배출하였던 재지 사족으로서 경제 적으로는 중소 지주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부안김씨 중에 대호지 3·1운 동에 참여하여 창의사에 배향된 이는 75명이며, 그중에 태형 90도 이상을 받은 김범준·김찬용·김형태 등 22명에 달한다. 연안 차씨는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의 후손인 오산공파가 대호지면 적서리에 세거하고 있다. 이 외에도 차천로의 동생 차운로(車雲輅)의 후손 표1) 대호지면 집성촌 현황 (2002년 현재) * 강(강열공파) 충(충장공파) 직(직제공파) 오(오산공파) (『대호지면지』, 2002 참조) 부안金 연안車 의령南 밀양朴 경주崔 길성崔 여산宋 제주高 두산1리(66) 54호 두산2리(69) 34호 사성1리(82) 25호(충) 18호 사성2리(74) 13호 도이1리(76) 42호(충) 도이2리(80) 10호 적서리(162) 50호(오) 의령남(충) 12호 14호 장정리(97) 16호 7호 조금리(178) 37호(강) 마중리(72) 15호(직) 송전리(115) 출포리(87) 16호 계 104 87 82 34 13 7 22 14 1480년 1760년 1700년 1530년 1640년 1730년 (강)1550년 (충)1500년 (오)1610년 (직)1560년 성씨 동리 (세대수) 낙향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