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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 뿐이십니다. 35) 라고 하여 이철승이 석담(石潭) 이이와 우암 송시열에 이어 화서 이항로와 성재 유중교의 학통을 이어 존화양이론을 편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라고 칭송하였다. 그는 발문의 말미에 찬사를 짓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찬(贊) 넓은 강위의 우뚝 솟은 기둥이요 洪河峙柱 한 겨울의 외로운 송백이라 大冬孤栢 화서 성재의 진결이며 蘗玉眞訣 석담 화양의 정맥이라 石華正脈 문리가 조밀하고 깊으시고 文理密察 경의가 밝고 밝으시다 經義昭晳 사문을 막고 호위하니 閑衛斯文 마음 괴로워 피가 흐르는도다 心苦血瀝 남상찬 역시 1919년 대호지 만세운동에 형인 남상돈과 남상락 등과 함께 참여하였으나 왜경에 의해 체포되지는 않았다. 그는 학문에 힘써 그가 남 긴 저서로는 부친인 남택희를 기리는『백파공유사(柏坡公遺事)』와 모친을 기리기 위한『전주이씨언행록』이 있다. 남상찬은 1963년 11월 10일, 65세 을 일기로 작고하였는데 유족들은 그의 학문과 언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따서『경재문고(絅齋文稿)』를 발간하였다. 3) 남성희 남상학 남상은 3부자 한편 성암(城菴) 남성희(南星熙)와 그의 장남 상학(相學)과 차남 상은(相 殷)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남성희(南星熙, 1868-1941, 호: 義忠)는 충장공 남이흥의 3남 두기(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