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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남상락(南相洛, 1892~1943)은 남상돈의 아우로 자는 사중(士中)이고, 호는 해강(海崗)이다. 1892년 7월 26일 대호지면 도이리 423번지에서 태 어났다. 품성이 관후하고 화평하였으며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항상 가득 하였다. 그는 일제에 의한 국권강탈 이후 측량을 공부한 특이한 경력을 가 지고 있다. 그는 지적측량사로 각 지방을 순회하였는데 구한말 제도로는 면적을 결(結) 또는 두락(斗落) 단위로 되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하여 면적 의 단위를 작게 정리하여 그 단위를 평(坪)으로 제정하였다. 그리고 토지조 사사업의 실시에 의하여 수많은 토지를 강탈하였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농민을 위한 공정한 토지측량을 하는데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남선우씨의 증언록, 1986년 11월). 남상락은 1919년 3월 3일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하였다가 독립만 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1매를 얻어서 일인상점에서 구입한 램프 속에 은닉하여 인천항을 출발 대호지에 귀향하 게 되었다. 그리고는 대호지 4·4 운동에 주축이 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4월 23일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체포되어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이 확 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고자 하였으 나 노모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구국을 위해 문맹을 퇴치하고 민 족 자주 사상을 고취할 목적으로 사성리와 도이리에 사설학당을 세우고 교 육에 전념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폐쇄되었다. 남상락 애국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