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page

152 | 장공 남이흥의 3자인 두기(斗機)의 9세손이다. 이른바 낙동 5형제라고 부 르는 이들은 철희(哲熙)·규희(圭熙)·태희(泰熙)·택희(宅熙)·진희(軫熙) 이다. 그런데 택희와 진희가 출계를 하였는데 그 중 택희는 석구(錫龜)의 2 자인 일영(日永)의 계자로 들어갔다. 남상돈(南相敦, 1888-1921, 호: 東崗)은 남택희의 장남으로 1888년 12 월 9일, 대호지면 도이리 423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품성이 강직하고 천부적으로 효도하며 우애가 깊었다. 그는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에 서의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귀향하였다. 그는 대호지 만세운동의 준비하는 데 소요 경비를 부담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천의 장터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면 서 군중의 이탈자가 없도록 감독하였다고 한다. 그는 시위를 저지하려는 왜경이 총을 발사하자“맨손으로 내 나라의 독립을 되찾고자 하는 우리에 게 발포하는 놈은 때려 죽여도 무방하다”라고 크게 호령하는 등 시위를 주 도하였다. 그는 4월 23일 왜경에 체포되어 5월 13일 기소되었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동년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하지 만 가혹한 형벌의 여독으로 출옥한 다음 해인 1921년 6월 34세의 일기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8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 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상돈 생가지 남상돈 애국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