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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 는 정의부 고문으로 독립군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에는 길림성 중한 합변농회 변무처장과 고려혁명군단장을 지내다가 1926년 5월 조선혁명군 대본영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일제에 항쟁하였다. 그는 1926년 10월 1일에 조선총독부 신청사의 낙성식이 있음을 탐지하고 이날 폭탄을 투척 하기로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서울의 사직동 공원, 가회동 뒷산 등지를 근 거로 하고 활동하다가 1926년 10월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조선총독부 신청사, 경성부청, 종로경찰서, 조선은행, 조선 신궁에 폭탄을 투척하여 그것을 폭파하는 동시에 조선독립사상을 고취하려는 경 고문을 퍼트리려는 창의단 사건과 연결되어 1927년 8월 31일 경성지방법 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룬 후 그는 도이리에서 거주하였는데, 그가 1934년에 쓴 다음과 같은 한시가 전한다. 이 시는 이인정을 비롯하여 남상 욱·남우희·남상익·남상집·남상락·남상혁·남상찬·남천우·남영렬 등이 1934년 단오절에 지금의 장촌인 운학동의 흥룡호(興龍湖)에 천렵을 가서 지은 시이다. 31) 멀리서 선비들이 나 사는 곳을 찾았는데 / 逍遙仙 訪吾居 하찮은 내가 운림(雲林)속에 섞인 것이 부끄럽도다. / 自愧雲林也薄疎 음성과 기운이 하늘을 찌르니 오신 분이 선학 仙鶴같고 / 聲氣徹天來者鶴 이곳에 물이 가득하니 고기들도 즐거워하네 / 江湖滿地樂維魚 일제의 모진 바람은 어찌하여 꿈도 어지러운고 / 世間風雨何勞夢 몇 번이나 봄 가을 만나 다시 이 글을 볼 것인가 / 度回春秋且看書 이 모임이 이어지고 작별하기를 또 바라는데 / 願言雅會從別又 정다운 곡조만이 뜨거운 정서로 남았도다. / 情曲慇懃付緖餘 31) 南仲祐, 『愛國志士 海崗先生遺集』,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