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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1919년 4월 4일 아침(9시경)에 주민들이 대호지 면사무소에 모여들기 시 작하였다. 도로수선을 위해 집합하라는 면장 이름의 공문을 각 동리 구장 들에게 전한 결과였다. 당시의 면사무소는 지금 현재 대호지면 우체국과 현재의 파출소가 세워져 있는 지점의 바로 뒤편이었는데, 면사무소 앞에 모여든 군중은 약 500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송재만은 30척(약 9m) 죽간(竹竿)에 자신의 옷감으로 만든 태극기를 달 고 이것을 김순천에게 주어 군중 앞에 높이 매달게 하였다. 이로써 일제 강 점 10년 만에 태극기가 대호지 주민들의 눈앞에서 펄럭이게 되었다. 송재 만은 전날 등사한 애국가를 군중들에게 한 장씩 직접 배부하였다. 그리고 대호지 면장 이인정이 모여든 주민들 앞에 나서 연설하였다. 여러분을 모이게 하였음은 도로 수선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 조선 독립 운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니 여러분은 이에 찬동하여 조선독립만세를 힘차게 부르며 동군(서산군) 정미면 천의 시장으로 향하라. 남주원이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한운석이 지은 애국 가가 이대하의 선창으로 제창되었다. 이어서 면장 이인정의 선창에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송재만의 선창에 따 라 다음과 같은 선서문이 제창되었다 한다. <선서문> 1. 우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최후의 일각까지 몸 바쳐 싸우자. 2. 우리는 끝까지 행동을 통일하고 생사를 같이한다. 3. 우리는 우리 독립운동의 기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남주원의 집에서 군중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도록 술을 내어 대접했다. 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