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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위와 같은 사전 준비 모임에서 연락을 담당할 인물이 선정되었는데 명단 은 다음과 같다. 본 부 : 송재만(宋在萬) 조금리 : 송재만 두산리 : 김홍수(金洪壽) 장정리 : 최연식(崔連植) 사성리 : 백성일(白聖日) 적서리 : 김부복(金夫卜) 도이리 : 남신희(南信熙) 송전리 : 최정천(崔正天) 마중리 : 윤남(尹南) 출포리 : 박양삼(朴陽三) 인접한 각 마을의 연락은 거사 전야에 하기로 하였으며 행동 선봉대를 구 성하였는데 면 용인인 송재만을 행동 총책으로 하고 그 밑에 송봉운·최연 식·심능필·김팔윤·차재덕·김홍진·김찬용·남태우·고수식·송무 용·안상춘·김순철·김형배·김금옥·김길성·남상은·남성우·남윤 우·전성진·김장안 등을 두었다. 행동 총책 송재만(宋在萬, 1891. 10. 15~1951. 2. 27)은 당시 28세로, 대호지면 조금리 364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범일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세운동의 선두에 서서 활약하였으며, 일경에 구속 되어서도 거사의 책임은 자신의 단독행위임을 진술하여 다수 동지들의 희 생을 막아 체포된 이들 주에 가장 긴 5년 형을 받았다. 또한 면내 지역을 나누어 몇 사람씩 인원 동원의 책임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부 지역의 경우 마중리는 김도일과 이달준, 송전리는 민재봉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