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page

| 117 라고 하여 동학은 단발하고 검은 옷을 입는 개화파와 다르며, 유불선의 자비와 수련의 원리를 합치한 것으로 유교의 도체에서 어긋난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박인호의 일기인『춘암상사댁일기』에 의하면, 1936년 10월 30일 음성교 구장 김동환을 비롯하여 천윤근, 김장희가 방문한 자리에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진리를 알아서 두 마음 없이 수심정기(守心 正氣)하라”라는 교훈을 특별히 하시다. 라 하여 최제우의‘논학문’에서의‘수심정기’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충남지역에서의 동학농민전쟁은 예산과 태안·당진·천안 등지에서 크 게 일어나 홍성의 홍주성, 서산의 여미벌 등지에서 관군과 일본군과의 일 대 전투를 수행하여 큰 전과를 세우기도 하였다. 전라도의 김개남부대는 금산을 거쳐 진잠과 회덕 일대로 들어왔으며, 전봉준이 이끄는 1만여 명의 동학군은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과의 일대 전투를 수행하였다. 충남지방의 대표적인 동학 지도자로는 예산의 박인호와 박광호를 비롯하 여 면천의 박희인, 당진의 박용태와 김현구, 홍성의 김두열과 한규하, 태안 의 문장로, 문장준, 대전 진잠의 박만종 등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인 박인호는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29세 때인 1883년경에 동학에 입도하여 덕포의 책임자로 활동하였 다. 1892년에는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하는 복합상소에 종형제인 박광호와 함께 참여하였으며, 다음 해인 1893년 3월에는‘덕의대접주’자격으로 보 은 취회에 수천명의 교인들을 데리고 참여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시 에는 서산에서 기병하여 서산, 예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예산 출신인 박 인호는 1908년에는 천도교의 대도주가 되어 천도교를 이끌었다. 19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