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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가르침을 받고 무극대도(無極大道), 즉 천도(天道)를 깨달아 동학을 창시 하였다. 최제우는 1861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동학을 펴기 시작하였다. 그는 시 천주(侍天主), 보국안민(輔國安民), 다시 개벽(=後天開闢), 유무상자(有無 相資) 등을 동학의 핵심 가르침으로 제시하였다. 시천주란“사람은 누구나 제 안에 하늘님을 모신 존재”라는 뜻으로 만인 평등의 근거가 되는 동학의 핵심사상이다. 보국안민이란 잘못된 나라를 바로 잡고 도탄에 빠져 있는 백성들을 널리 구제하여 편안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개 벽’이란 1860년 동학 성립을 기준으로 낡은 세상인 선천(先天) 5만 년이 끝나고, 이상적인 새 세상인 후천(後天) 5만 년이 새로 열린다는 뜻이다. 이 같은‘다시 개벽’사상은 부패한 조선 왕조가 끝나고 정씨가 새로 세상 의 주인이 된다는『정감록(鄭鑑錄)』신앙과 더불어 당시의 민중들에게 변혁 (變革)의 꿈을 심는데 기여하게 된다. 유무상자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지 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아낀다는 사상이다. 이 유무상 자의 가르침 동학 성립 때부터 1892-3년의 교조신원운동을 거쳐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단절됨 없이 실천되어 민중들을 동학 조직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조선후기 신분제가 동요되면서 전통적 신분구조인 양반제도는 비판의 대 상이 되었다. 이와같은 신분제의 동요 속에 양반층은 사회적 권위가 실추 된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모순의 확대로 인해 농민층이 집단화하게 되었으 며, 농민층은 개벽이론을 담고 있는 동학에 크게 공감하고 자신들의 희망 과 지향을 이에 투영시키고자 하였다. 동학은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교세가 삼남 지역은 물론 강원도 황해도 등 북부지역까지 확대되었다. 도참이나 그 밖의 민간 신앙이 동학으로 집약되 었으며, 봉건적 질곡에 억눌려 있던 여러 계층이 동학이라는 종교와 그 조 직을 매개로 하여 점차 통합된 세력을 형성하게 됨으로써 1894년 동학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