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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군수를 지낸 논산 출신의 양기하는 국권이 피탈당하자 망명하여 남만주 일 대에서 활동하였다. 유하현에서 대한독립단의 교통부장을 맡았으며, 광복 군사령부의 선전부장과 정보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에는 상해로 가 서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으며, 김구와 함께 한국노병회의 조직을 주도하 기도 하였다. 참의부에서 활동한 당진 출신의 이종혁도 있다. 그는 일본육 사 출신으로 중위로 임관되었다가 퇴임하고 1924년 만주로 건너갔다. 그 는 참의부 조직에 참여하고 1927년 군사부위원장, 집행위원장에 임명되어 투쟁하다가 1928년 일경에 피체되었다. 충남 출신 인물 중에는 상해 임시 정부와 만주의 북로군정서와 같은 독립운동 단체와 연계하여 군자금모금 활동을 전개한 이들도 있다. 부여 출신의 이완식과 이문식, 논산 출신의 윤 교병 등이 임시정부를 위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했고, 보령출신의 김정 제, 부여출신의 노재철과 김형제 등은 북로군정서의 밀명 하에 군자금모금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미주에서 활동한 이로는 문양목과 임병직·송철·김용중 등이 있다. 태 안 출신의 문양목은 1905년 하와이로 건너가 고된 노동을 하면서 국권회 복을 모색하였다.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이듬 해 3월에 대동보 국회를 발기하고 중앙회장에 선임되었다. 1910년 대동보국회가 대한인국 민회에 통합된 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무, 총회장으로 활동하였 다. 송철은 191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승만이 주도하던 대한인동지회에서 임병직과 함께 활동하였다. 일본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로도 박응구?이정 현?임우철·채용석 등이 있다. 이들은 일본에 건너가 유학생으로 활동하 던 중에 독서회나 우리조선독립그룹과 같은 비밀결사에 참여하여 일제의 민족 차별과 민족 말살정책에 반대하는 지하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충남지역인들은 한말 일제강점기 적극적으로 독 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의병활동은 의병 전 기간에 걸쳐 강력하게 추 진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일제 강점기 이들은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