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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무령과 주석 등을 역임하면서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서천 출신의 김인전도 3·1운동을 주도하고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합류한 인물이다. 그는 임시의 정원 부의장과 인성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천안출신의 이종건은 1931년 부터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그는 조선민족혁명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1938년 무창 전투에 참전하였다. 1942년 조선의용대 원들과 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만주에서의 무장투쟁을 전개한 인물로는 김좌진을 비롯하여 다수가 있 다. 김좌진은 북로군정서군 총사령관으로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921년 자유시사변이후 김좌진은 이범윤이 이끄는 부대와 연합하여 대한 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총사령관이 되어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927 년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고 만주지역 한인사회의 생활 안정에도 노력하 였다. 그의 동생인 김동진은 김좌진과 함께 신민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으 며, 이후 한족총연합회에서 활동 중 일본군에 피체되었다. 김형동은 북로 군정서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박영희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김 좌진의 부관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였다. 이민화 역시 청산리전투에 동 참하였으며, 밀산현에 대한독립군단이 조직되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신 흥무관학교 교관였던 이장녕은 북로군정서군에 참여하여 참모장과 교관으 로 활동하였다. 청산리전투에 참여한 후 대한독립군단 참모총장이 되었다. 1923년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자 참모로서 참모부장인 이세영을 보좌하였 다. 강인수 역시 북로군정서군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붕해는 청 산리전투에 참여한 후 1923년 고려혁명군에 참여하였다. 김좌진 등이 신 민부를 조직하자 이에 참가하여 경비대장이 되었으며, 한족총연합회 군사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김종진은 고향인 홍성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망명하여 운남성 군관 학교 교도대를 졸업하였다. 1927년 만주로 가서 김좌진과 함께 활동하였 다. 1929년에는 재만조선무정주의자연맹을 조직하고 대표가 되었다. 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