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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 의 자주 독립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전국에 지회를 설치하였다. 충남에서 는 홍성·예산·당진·서산·공주·부여·천안 지회가 설립되었다. 한편 일제의 식민화 교육정책에 대항하기 위하여 1922년말 서울에 민립 대학기성회가 조직되었다. 각 지방별로 발기인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이때 홍성출신인 한용운이 중앙집행위원에 피선되었다. 충남지역에서는 당진· 아산·예산·청양·공주지역에서 지방부를 조직하여 기금을 모금하였다. 언론활동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지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지 방의 일본인 경찰이나 친일적인 지방 유지들의 비행이나 비리를 기사화하 는 정도였다. 이 일로 그들은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었으며 심지어는 구속되기까지 하였다. 물론 재판 결과 무죄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동아 일보 강경지국과 논산지국, 조선일보의 서천지국 피소사건이 그 좋은 예이 다. 종교운동으로는 홍성에서 조직된 유교부식회의 활동이 있다. 이 회는 1927년 조직되었는데 홍주의병장 김복한의 유명으로 조직된 유교진흥 단 체라 할 수 있다. 천도교에서는 지방에 교구를 설립하여 3·1운동, 신간회 운동 등에 참여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충남지역에서 이루어진 독립운동으로 위에 언급한 활동 외에도 의열투쟁 과 군자금 모금활동 등이 있다. 의열투쟁은 비록 계획의 단계에서 체포되 어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하였으나, 금산의 김태영은 일경을 처단하고 일본 군 수송열차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가 체포되어 고문의 여독으로 옥중 순국하였다. (4) 충남인의 해외독립운동 충남출신 인사들은 1945년 광복을 쟁취할 때까지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 미주 등 국외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의원이나 광복군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만주에서는 북로군정서와 신민부와 참의부 등에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