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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산, 대전의 인동ㆍ유성, 홍성의 갈산ㆍ홍동ㆍ장곡, 그리고 연기, 서천, 서 산, 청양, 아산, 부여, 보령, 금산 등 충남 전역에서 봉기하였다. 충남지방의 3ㆍ1운동은 3월 2일 부여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시작 하였다. 3월 2일 독립선언서가 부여의 천도교구에 전달되었고, 3월 6일 임천읍 구교리에서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면사무소와 보통학교 앞에서 만 세 시위가 있었다. 7일에는 부여면민들이 만세를 부르며 읍내를 행진하였 다. 3월 3일 예산 읍내에서 윤칠영 등 여러 명이 만세를 불렀다. 예산에서 는 3월 3일 이후 여러 차례 만세운동이 있었으며, 13일에는 동서리에서 대 흥보통학교 학생 3백여 명이 시장으로 나가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홍 성에서는 3월 7일 읍내 장터에서 군중들이 만세 시위를 하였다. 논산의 강 경에서는 3월 10일 만세시위가 있었다. 엄창섭과 고상준 등은 오후 3시경 강경의 옥녀봉에 올라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시위를 전개하 였다. 3월 10일부터는 충남의 거의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고 3월 27일 이후 확대되기 시작한 만세운동은 그 절정에 달했다. 공주에서 3ㆍ1 운동은 3월 14일 하오 4시경 유구읍 출신인 황병주(黃秉周)의 주도로 유구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4월 1일에는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4월 4일에는 옥룡동 주민 1 천여 명이 독립만세를 불렀다. 정안면에서는 4월 1일에 유림인 이기한(李 綺漢)이 주도하여 석송리와 광정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계룡 면에서는 4월 2일에 경천 시장에서 1천 여명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 세를 불렀고, 같은 날 우성면에서는 밤에 도천리와 쌍신동 주민들이 횃불 을 올리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으며, 동대리 주민들도 독립만세를 불렀 다. 탄천면에서는 4월 3일 밤에 면내 각 동리 약 1천 5백명 주민들이 횃불 을 올리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인면에서는 4월 4일에 면민 1천 5백여 명이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