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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충남의 경우는 홍주의병에 참여한 김재정(金在貞)의 장자인 김한종(金漢 鍾)을 책임자로 하여 예산과 연기에 곡물상을 두어 거점으로 삼고 타 지역 에 비해 투쟁적으로 활동하였다. 광복회의 활동 중에 두드러진 것이 칠곡 의 부호 장승원(張承遠)과 아산의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의 처단 건이었 는데, 특히 박용하의 처단은 충남지회의 책임자인 김한종과 장두환 등에 의해 1918년 1월 단행되었다. 그 외에도 한훈, 유창순, 조종철, 강석주 등 이 활동했다. 한훈은 풍기광복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한편으로 전라도지 역을 무대로 별도의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했다. 한훈은 광복회 요원들이 체포된 후 광복단의 대표 자격으로 박문용과 함께 상해로 가서 국무총리 이동휘를 비롯하여 안창호·이동녕 등 임시정부 요인들을 만나 광복단결 사대에 대한 임시정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임정의 지원 약속을 받아 낸 그는 1920년 3월 귀국하여 박문용과 함께 광복단결사대를 조직하여 활동 하였다. 1919년 3월 말 서울에서 전협을 대표로 하여 총재 김가진 등에 의해 조 직된 조선민족대동단은 전 민족의 단결과 독립을 목표로 조직된 단체인데 이강(李堈) 공을 상해로 망명시키려 한 단체였다. 조선민족대동단은 연 기·공주·유성에 군감(郡監)을 두었는데 홍성의 최익환, 부여의 이건호, 아산의 윤용주, 논산의 이을규 등이 활동했다. 1919년 4월에는 상해에서 임용주·연병호 등에 의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을 위해 대한민국청년외 교단이 조직되었는데, 서울에 본부를 두고 대전·회령·청주에 지부를 두 었다. (2) 3ㆍ1운동의 전개 충남지역에서의 3ㆍ1운동은 타 지역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3월 2 일 논산과 부여, 3월 3일 대전 인동과 예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천안 아우내장터, 공주의 장기와 정안, 당진의 대호지와 천의, 논산의 강경ㆍ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