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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성희요 자는 원일이며 호는 성암이요 의령인으로 공의 18대조 휘 재니 조선 조 개국 일등공신이고 영의정이요 시 충경하고 문종 조 좌의정 시 충간이며 휘 지의 16대손이고 인조 조 정묘호란에 명신 충장공 휘 이흥의 10대손이다.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행 통훈사도사주부 휘 속의 8대손이요 통정대부사헌부감찰 휘 흘의 7대손이고 절충장군 중추부 첨지 휘 익문의 6대손이며 증조 휘 도수이니 무과부장이요 조 휘 석건이고 고 휘 정근이요 비는 달성서씨이다. 공이 무진 6월 3일생 하니 천성이 관후하여 종족 향당에 상이인자하고 봉선에 이성하며 사친에 이효하고 도호의숙에 다년 수학하였고 유생들과 더불어 민족자존사상과 구국상론하였다. 드디어 1919 기미년 대호지4.4 독립운동에 맹활약하다가 일병에게 체포되어 서산경찰서에서 3개월형인 태형 90도의 형을 받았으며 특히 백야를 수반한 장자 상학공과의 연계성 여부관계로 가진 회유와 가혹한 형을 받아 전신에 유혈이 낭자하고 기지사경이 됨에 공의 생명이 위독함을 느낀 왜경의 전인출옥 통보를 접한 동지들의 도움으로 동년 4월 24일에 귀가하였다. 슬프도다. 신사 6월 23일에 졸하니 묘는 사산리 사곡 건좌에 장하다. 광복 50주년에 대한민국은 공에게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여 영령을 위로하였다. 성암 옹의 장자 상학 공은 인접군 출신인 백야 김좌진장군과 같이 군자금 모금과 광복단 의혈투쟁에 협력한 후 왜경의 탐색을 피하여 만주로 망명한 후 북로군정서의 독립군에 입대하여 청산리대첩에서 전사하였고 차자 상은 선생은 대호지4.4 독립운동에서 주도 지사로 분투하다 피체되어 양년 옥고를 치루었으니 한 집에 3부자가 독립운동을 하였는바 불고 처자 불고 가사로 사생취의하셨으니 천국에 계신 님은 수명천추하오리라. 초 배 능성구씨는 무진생이요 을축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