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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은 1918년 음2월 13일 충남 청양땅 화성면 매산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일찌기 타고난 무인으로서의 자질과 그 포부에서 일본군에 몸을 담았다가 해방을 맞으셨다. 46년 5월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감으로서 국군창설의 기간요원이 되었고 이후 각급 직책에서 두각을 나타내서 6.25 사변 발발시는 이미 육군헌병사령관의 요직에 있어 국군후퇴작전에 수훈을 세우셨다. 전란중에는 수도사단장과 야전사령관을 거쳐 59년 2월 군인으로서의 정상인 육군참모총장이 되셨다. 이때 장군은 정군을 단행하여 해이된 군기를 쇄신하였을뿐 아니라 4.19때는 계엄사령관으로서 군인의 본분만을 의연히 지켜 국민의 추앙을 받으셨다. 5.16 혁명후에는 국방군장관에 이어서 내각수반되어 국정을 이끌며 경제기획원과 외무부마저 도맡아 국가 재건의 기틀을 다지셨다. 하야후에도 인천제철사장 등으로 계속 일하였으며 10.26 사태 후에는 국정자문위원이 되어 비상시국의 안보와 정책에 끝까지 이바지하셨다. 한편 장군은 저러한 대임의 틈틈이 배움에 힘써 우리 국방대학원을 비롯해 미국 육군참모대학에서 군사학을 이수하였고 한때는 죠지 워싱턴대학에서 정치 경제 등을 연구한 바도 있으시다. 그래서 장군은 천부적일뿐 아니라 후천적으로도 자기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간 지.용덕을 가춘 장군으로서 일생 몸과 마음을 다받쳐 이 나라의 기둥으로 일하다가 80년 10월 19일 이승을 떠나니 향년이 63세이셨다. 장군의 업적과 공훈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고 국군에서는 최초의 육군장으로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