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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조씨 십삼충(咸安趙氏十三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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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忠)과 의(義)는 사람의 당연한 도리(道理)이나 이를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충절(忠節)의 인물은 많지 않은데 함안조씨(咸安趙氏) 문중(門中)은 대대로 충의(忠義)의 가문(家門)으로 나라가 위난(危難)에 처했을 때 분연(奮然)히 일어나 위국헌신(爲國獻身)한 분이 열 명이 넘으니 놀랍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생육신(生六臣) 정절공(貞節公) 조려(趙旅) 선생의 충절의 정신이 후세(後世)로 면면(綿綿)히 이어온 결과이기도 하다. 조수천(趙壽千) 공(公)은 정국계획(靖國計劃)에 참여하여 위훈(偉勳)을 세운 정국원종일등공신(靖國原從一等功臣)이고, 조붕(趙鵬)‧충의공(忠毅公) 조종도(趙宗道)‧조준남(趙俊男)‧조신도(趙信道)‧조민도(趙敏道)‧조응도(趙凝道) 제공(諸公)은 임진왜란 시에 전장(戰場)에서 싸우다 순국(殉國)하였으며 세 분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다. 조탄(趙坦)‧조방(趙垹)‧조형도(趙亨道) 제현(諸賢)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켜 적을 막아 공을 세웠고 조탄(趙坦) 공(公)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다. 조익도(趙益道) 공(公)과 조선도(趙善道) 공(公)은 이괄(李适)의 난(亂)을 평정하는데 공(功)을 세워 진무원종일등(振武原從一等) 훈(勳)에 녹훈(錄勳)되었다. 조계선(趙繼先) 공(公)은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청군(淸軍)이 공격(攻擊)하여 왔을 때 이완(李莞) 장군과 같이 싸워 크게 공(功)을 세우고 순국(殉國)하였다. 문숙공(文肅公)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선생은 한 문중(門中)에서 열 분이 넘는 충신(忠臣)이 나오는 일은 고금(古今)을 통하여 드물고 오래도록 칭송(稱頌)할 일이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선생은 함안조씨십삼충록(咸安趙氏十三忠錄) 서문에서 사관(史官)인 나는 삼가 이분들의 관직(官職), 명자(名字), 사적(事蹟) 등을 서술하여 역사(歷史)의 자료로 엮는다고 하였다. 함안조씨 13충신 제현(諸賢)들의 사적(事績)은 한 문중(門中)의 자랑거리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후세인(後世人)에게도 귀감(龜鑑)이 되도록 이를 기록한다. 2017년(丁酉(정유)) 6월 전 서울市立大學校(시립대학교) 總長(총장) 慶州後人(경주후인) 鄭熙彩(정희채) 謹撰(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