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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安趙氏獨立有功者(함안조씨 독립유공자) 우리 민족 최대 수난사(受難史)인 일제 강점기에 선열(先烈)들은 일제의 온갖 핍박(逼迫)에도 굴하지 않고 치열(熾烈)한 독립운동(獨立運動)을 전개(展開)하였습니다. 이분들의 피와 땀이 서린 투쟁은 구국광복(救國光復)의 초석(礎石)이 되었습니다. 함안조씨(咸安趙氏) 문중(門中)에서는 독립운동에 헌신(獻身)한 유공자(有功者)가 90여 명이 넘으니 실로 장하고 경탄(敬歎)할 일입니다. 예로부터 함안조씨(咸安趙氏)는 충의(忠義)의 집안으로 나라가 위난(危難)에 처하면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精神)으로 국난극복(國難克服)의 일익(一翼)을 담당한 충신(忠臣)이 많았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전후한 시기에는 순의(殉義)한 일곱 분을 포함한 13명의 충신이 나왔습니다. 이런 충의(忠義)의 정신이 후대(後代)로 계승(繼承)되어 우리 민족 최대 규모 독립운동인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전후한 시기에 절정(絶頂)을 이룬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정원의장(議政院議長)과 외무총장(外務總長)을 지내고 일가(一家)에서 12명의 독립유공 수훈자(受勳者)가 나온 조소앙(趙素昻) 선생(先生), 대만에서 일왕(日王)의 장인을 자격(刺擊)하고 23세의 나이에 순국(殉國)한 조명하(趙明河) 의사(義士) 외 90여분의 공적(功績)을 기록한 공훈록(功勳錄)을 발간한 일이 있는 함안조씨 문중에서는 다시 이분들의 이름을 기록한 비석을 수비(竪碑)하니 이 또한 선대(先代)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을 후세(後世)에 전하는 일로 매우 이례적(異例的)이고 값어치 있는 일입니다. 시대(時代)와 사람에 따라서 가치관(價値觀)은 바뀔 수 있지만 나라를 위하여 헌신(獻身)한 독립유공자(獨立有功者)의 숭고(崇高)한 정신(精神)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큰 가치(價値)입니다. 함안조씨(咸安趙氏) 독립유공자(獨立有功者) 제공(諸公)들의 이름 앞에 삼가 옷깃을 여밉니다. 2017년 6월 光復會 會長(광복회 회장) 朴維徹(박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