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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상(啓象). 호는 우암(友巖). 출신지는 풍서면(豊西面) 가곡리(佳谷里:가일마을, 현 풍천면 가곡리). 권준희는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그가 가입한 풍기광복단은 1913년 채기중(蔡基中)을 중심으로 의병계열 인사들이 경상북도 풍기(豊基)에 모여 조직한 비밀결사단체이다. 이후 풍기광복단은 1915년 7월 대구에서 비밀리에 결성되어 활동하던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 일부와 결합하여 광복회(光復會)로 발전하는데, 권준희는 그 고문직을 맡았다. 또한 그는 류시만(柳時萬)·권준흥(權準興)·권영식(權寧植)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여 박상진(朴尙鎭)에게 전달하였고, 이로 인하여 그는 1918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처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하지만 권준희 선생은 아직도 건국훈장이 수훈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