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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의하고 품성이 호방했으며 낙선호의하였다. 을미년에 서산 선생이 통문을 돌리고 의병을 일으켰을때 어린 공의 울분은 남달랐다. 기해년에 향산 이만도 선생의 자중업공의 여와 혼인하였다. 동년 10월 왕 고 서산 선생이 하세하자 종통을 계승하였고 계묘년에 혜릉 참봉에 제수되었다. 정미년에 서산 선생문집을 간행하였고 호계서원 재산을 중심으로 협동학교 설립에 적극협력하였다.무신년에 임천서원을 복설하였으며 을미년에 광동학교를 설립하여 계유년에 서후공립보통학교로 발전시켰다. 병자년에는 소계서당을 건립하였다. 앞서 정미년에 이 이강년 김상태 장군의 의병진에 가담해 각지의 항일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을묘년에는 도만하여 석주 이상룡 선생에게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했다. 경신년에 의용단을 조직하여 영남일대의 부호가로부터 독립군자금을 모아 임술년에 이상룡 선생에게 전달했다. 동년 12월 의용단사건으로 네번째 피체되어 대구감옥에서의 혹심한 고문에도 시종함구불신하였고 석방 후 요시찰인물로 감시받았다. 그 후 종가의 세전 전재산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하였고 그 용도를 은폐하기 위해 심지어 타락인 행세를 하며 온갖 비방을 감내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불굴의 우국충정이었다. 이 사실은 지봉하 중환공의 제문에 실려있다. 병술년 5월에 하세하니 향년 60세요. 묘는 김정곡 목단암 상자좌원이다. 1995년 광복절에 정부에서 서산 선생과 공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여 공업을 천양했다. 배유인 진성 이씨는 1녀를 두었고 묘는 합봉이다. 계 배유인 안동 권씨는 태석의의 여로 무육이고 묘는 가서 복병산 인하이다. 사자시인은 충후근신하여 사업을 부흥하였고 서는 서병춘이다. 손은 종길 종필 종성 증손은 형호 성호 완호요. 손서는 장인수 변재환 남인탁 외손은 서점 서묵 서걸이다. 명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