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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天安) 사람으로 1924년에 경북 안동(安東)으로 전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 체결됨을 통분하여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고 주권회복을 도모하였으며, 1907년에는 해아(海牙)밀사파견에 연루되어 노령 해삼위(海蔘威)로 피신하여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1920년에는 만주에서 북로군정서 김좌진(金佐鎭)과 조국 광복을 도모하고 청산리독립전쟁(靑山里獨立戰爭)에 참가하였다. 1925년에는 만주 영안현(寧安縣)에서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고, 검사원(檢査院)의 검사원(檢査員)으로 선임되어 지방조직과 독립군의 편성 및 훈련에 주력하였다. 1929년에는 재만 각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여 한족연합회(韓族聯合會)를 결성하였으며, 1930년 일제의 탄압이 혹심해지자 하얼빈(哈爾濱) 접경지인 산시역(山市驛)에 은신하였다가 1932년 10월 하얼빈 도외(道外) 북정양가(北正陽街) 4호에서 병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