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age


2page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707 의병대장 척암 김도화 강학소 이산정을 찾아왔다. 안동(安東) 지방 사람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도사(都事) 김도화는 곽종석(郭鍾錫)·지평 김흥락(持平 金興洛)·권진연(權晋淵)·강육(姜 ?) 등과 함께 거의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분쇄하자는 이른바 안동통문(安東通文)을 각지에 파송하였다. 이에 벽산 김도현(碧山 金道鉉)이 김도화를 찾아와 거의 방략을 논의하였다. 아울러 안동 의병의 총수인 권세연(權世淵)과 도정 유지호(都正 柳止鎬)도 함께 의논하였다. 1896년 1월 안동부를 점령하였던 안동 창의대장 권세연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방의 의진들은 정월 그믐께 친위대의 병력에 의하여 안동부가 함락되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오랫동안 항일의 전통적 사상으로 뭉치고 일어났던 이 지방 인사들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안동에서 흩어진 의진의 중심 인물들은 다시 각처에서 병력을 수습하고 점차 전력을 회복하였다. 그 중에 안동 청량산(淸凉山)에서 새로 복수창의(復 倡義)의 기치를 세운 김도현과 유시연(柳時淵) 등의 의병진을 위시하여 권세연 및 영천(永川) 등지의 의병들은 2월 중순경부터 다시 안동부에 집결하였다. 이 때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이므로 안동부에 주둔하였던 파견군을 철수시켰다. 따라서 의병진이 안동부를 무난하게 차지할 수 있었다. 입성한 후 김도화는 의병 대장에 추대되었고, 유난영(柳蘭榮)이 안동도총(安東都摠)으로 임명되었다. 그밖에 그 일대에서 신망이 두터운 원로들로써 의진이 구성되었다. 이즈음 김도화는 의병장 경암 서상열(敬庵 徐相烈)에게 다음과 같은 우국시를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