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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조는 감역 노강 휘 민익이고 고는 거사 포헌 원재이며 비는 안동김씨로 참봉 언근의 따님이다. 부군은 고종 계유(1873년) 3월 13일 둘째 아들로 출생하니 미목(眉目)이 청수하고 기상이 호첩하며 재품이 영민하여 정축 5세에 시학 신사 9세에 능히 칠언시를 지어 학문이 일취월장하였다. 신묘 19세에 이르러 국운의 위급이 조석지간 일때 과거를 위한 학문을 결연히 중단하고 의암 유인석 의진에 종사로 부진 지성을 다하여 항전하다가 제천 남산전 투때 입은 총상이 악화되고 의암을 따라 후일을 도모하던 이국 만주의 풍토가 병세를 심중악화시켜 고종 기해(1899년) 겨울 귀국 환가하여 그 다음해 광무 4년 경자(1900년) 정월 14일 방년 28세로 후사 출생을 보지 못하고 별세하니 아- 장장 7년여를 불원가사하고 오직 복수설치와 국권회복을 위하여 몸을 바쳤으니 그 우국충절이 결연하다. 북방을 왕래할 때 지은 북정시 70운과 서행일기를 남기고 부형과 족당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면결 새옷으로 갈아입고 단정히 앉어 운명하니 의암은 부음을 듣고 3일간을 불식통곡하였다 한다. 배는 달성서씨 상우의 따님으로 부군이 棄世(기세)한 다음 유복자 복영을 두었고, 손자 중훈과 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