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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동은 해발 400고지 선상에 위치 동쪽으로는 속칭 감티동산 백만원궤 서쪽은 서동네동산 북쪽은 모라리 오름과 병풍석 남쪽은 앞동산 마치 병풍처럼 둘러쌓인 곳 안에는 1850년대 초부터 진주강씨 양천허씨 청주한씨 김해김씨등 40여 세대가 씨족을 이루어 윗빌래 서동네 동카름등으로 호칭 삶의 터전이던 곳 목축과 화전에 의존하여 주작물로는 지슬(감자), 모밀(메일), 마시리조, 봉개시리조, 산뒤(밭벼)팔 등 산성토양에 적합한 작물을 재배 해변마을과 쌀, 보리등을 물물교환 양식하였고 생황용수는 나는물 새물통 앞내창 만내꼴내창 큰을영 셋올령 웅통물 등지에서 봉천수로 먹었으나 극한 가뭄에는 동천전물을 이용하면서 한집안 식구처럼 살아오던 중 1948년 제주4.3사건이 발발하자 동년 음력 10월 11일 진압부대에 의해 전가옥을 불지르고 강재소개령을 발동 산산히 흩어지게 되었다. 그후 1962년도 5.16혁명 정부하에 25세대가 융자금으로 재건 입주하였으나 차츰 소득이 떨어져 경제적 어려움으로 파동되어 역사속에 마을로만 부르게 되었다. 이에 마을의 역사를 이 비에 새겨 후손에게 알리고 냇서왓 화전마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이 표석을 건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