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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 3.1운동 기념탑 1919년 3월 8일 토요일 오후 1시 계성학교 교사와 학생 전원은 김영서 교감의 지휘로 큰장(현 서문시장)에서 일제히 독립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교감 김영서와 교사 최경학, 권희원, 최상원등은 학생 동원을, 백남채는 거사 계획과 준비를 담당 거사일을 3월 8일로 결정하여 신명학교와 대구고보등에도 통보하였다. 만성교회(현 제일교회) 조사 김태련은 계성학교의 등사기를 자기집으로 가져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고 아담스관 지하실에서는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 날 본교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운집한 1천여 명의 독립만세 행렬은 경정통(현 종로)를 지나 동성로까지 행진하였으나 일제 군경의 가혹한 탄압으로 무차별 검거 해산당했고 3월 10일 오후 4시 덕산정 시장(현 염매시장)에서 재 궐기하였으나 이 또한 강제해산 당하였다. 그 후 본교는 휴교 조치되었고 영남지방에서 체포되어 실형 선고를 받은 76명중 본교와 관련된 인사는 44명이나 되었다. 이 거룩한 정신을 기리고 그 뜻을 계성인들에게 길이 전하고자 여기에 계성 3.1운동 기념탑을 건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