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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문의 등사 및 태극기를 제작하여 이를 인근지역에 널리 배부하고 이어 동년 3월 8일 대구 만세사건 때는 학생 동원 태극기 배부 등 앞장서서 활동하시다가 현장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사범으로 징역 10개월의 언도를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시다. 그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서울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을 하시고 안동의 경안학원에서 후배 육성에 종사하시다가 대구 교외의 동촌에 거주를 정하고 기독교의 영수로서 선교 및 농촌운동을 전개하던 중 옥고의 여독과 과로로 인하여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0년 1월 28일 향년 31세로 소천하시다. 이에 1990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바 1990년 12월에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이 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1990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