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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변에 위치한 다전곡 아늑한 기슭에 한 무덤이 있으니 이는 곧 우국지사 지오 선생의 유택이다. 선생의 성은 이씨 휘는 경희 자는 군선 관은 인천이다. 고려 상서 좌복야 상주국 소성후 휘 허겸을 시조로 선조 임진년 왜란 때 팔공산의 창의를 주관 입공하고 무태리에 복거한 태암 선생 휘 주의 11세손이다. 고의 휘는 병두 비는 경주최씨이며 고종 17년 경진 6월 11일에 출생하사니 용의가 비범하고 자품이 영민하셨다. 일찌기 한성 기호중학을 졸업한 후 을사보호조약 이래 시정이 어려워짐에 따라 대구협동 등 제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2세 교육에 전념하셨다. 기울어지는 국권을 걷잡을 수 없었던 중 경술국치를 당하여 사직이 전복되자 비분강개함을 금치 못하셨다. 4243년 8월 중국 봉천성 장백현에 망명하여 당지에서 다시 달신학교와 중국어언학교를 설립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