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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 INSIGHT Air- power Report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글·사진 제공 쿵디담(블로거,‘쿵디담의 다람쥐우리’운영) 40 |Air-powerReport| 잉글리쉬 일렉트릭 사는 로얄 에어크래프트 에스테블리쉬먼트 (RAE)와 협력하여 롤스로이스 에이본(Rolls-Royce Avon) 엔진 2기를 지금은 보기 드문 수직으로 겹쳐 배치하고, 테이퍼 (Taper)각이 없이 날카롭게 뒤로 젖혀진 사각형 얇은 주날개와 낮은 위치의 수평 미익을 가져 고도 3만 피트에서 마하 1.5로 비행이 가능한 기체를 목표로 한 혁신적인 콘셉트를 세웠다. 1948년 12월에 비슷한 외형을 가진 무동력 글라이더를 제작 하여 시험을 한 결과 1949년 5월에는 ER.103을 바탕으 로 초음속 요격기로 완성시킬 요구사양 F23/49(1949 회계연도 전투기 43호 규격)이 군수성에서 승인되어 P.1이란 이름으로 프로토(초기) 타입 주문을 받았는데, 에이본 엔진의 실용화는 압축기 실속(Surging) 문제에 부딪혀 늦춰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층 작은 암스트롱 시들리 사파이어(Armstrong Siddeley Sapphire) Sa.5 엔진으로 동체의 빈 구멍을 메우기로 했다. 엔진의 미완성으로 인한 산고 대영제국이 치열하기 짝이 없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치러낸 직후,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짜내고만 영국 정 부는 경제력이 피폐해져 군 비를 지출할 여유가 없어지자 당시 집권당이었던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정권 하에서 군사비 지출에 관한 억제를 시종일관 추진했다. 그런 반면에 같은 시기에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한 미국과 소련은 독일에서 새롭게 수혈받은 연구 인력을 동원하고 첨단 항공 기술에 무 진장한 예산을 퍼부어 발전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은 초음속기의 개발에 있어 미국은 물론 소련에도 크게 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47년 군수성에서는 향후 전투기로 전환 가능한 초음속 항공기 ER.103 사양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선두에는 출 중한 고성능 폭격/정찰기 캔버라의 설계자로 널리 알려진 윌리엄 테디 페터(William “Teddy” Petter : 1908~1968)가 우뚝 서 있었고, 그는 E. E.사의 개발팀과 페어리 델타 2(Fairey Delta 2) 개발팀은 함께 두 기종의 실현을 위한 기초 연구를 시작했다. 영국 최후의 초음속 전투기 BAC 라이트닝(E. E. Light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