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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7일 주일 18 성경 연중 제26주일·한가위 (루카 12,15-21) 허규 신부의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흔히 가을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한국인으로 서 참으로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계절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계절은 우리에게 단조로움을 떠나 풍요 함을 선사합니다. 이런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성과 생각을 갖 도록 해 줍니다. 한가위에 맞게 오늘 독서 말씀은 모 두 풍성함과 수확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엘서는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 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 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 와 봄비를 쏟아 준다”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비는 하느님의 은총과도 같습니 다. 농경 사회에서 비는 땅으로부터 소 출을 내는데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입 니다. 지금이야 과학의 발전으로 예전보 다 쉽게 물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쓸 수 있지만 고대 사회에서 비는 절대적이라 고 말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러한 주님의 은총으로 땅은 풍성한 결 실을 맺게 되리라는 것이 요엘서의 예언 입니다. 한편, 요한 묵시록은 조금 다른 의미 의 수확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 는 것은 자연적인 수확이 아닌,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 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 확할 때가 왔습니다”라는 천사의 외침 은 이제 세상에 종말의 때가 왔다는 의 미와도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자주 종 말과 심판을 나타내기 위해 곡식의 수 확이라는 표상을 사용합니다. 마치 가 을이 되어 곡식이 익으면 이것들을 모 아 들여, 좋고 나쁜 것을 가리는 것처럼 종말의 때에 하느님의 심판은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는 말씀은 한편으로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잊을 수 있지 만, 그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 씀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앙인 들에게는 영원한 안식이 그리고 그들을 박해하는 이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기 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심판의 말씀은 오히려 믿는 이들에게 는 희망을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 을 통해, 풍성한 소출을 보여지는 하느 님의 은총, 그리고 종말 때에 이루어질 심판 역시 무서운 표상들과 함께 소개 되지만 결국 하느님의 은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복음은 부유한 어떤 사람에 대한 비 유를 전합니다. 소출이 많아 그것을 모 두 곳간에 모아둘 수 없는 어떤 부유 한 사람. 그는 궁리 끝에 곳간을 새로 짓고자 하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목숨 은 하느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다 시금 일깨워 줍니다. 이 비유의 가르침 은 ‘모든 탐욕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쌓아둘 곳이 없는 곳간을 가 진 부유한 사람은 자신 만을 위한 더 큰 곳간을 마련하는 해결책을 생각해 냅니다.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 해 부와 가난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 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나 가난 자체보 다는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나누지 못 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 역시 부유한 사람의 해결책에는 이웃이나 나눔은 없고 오 로지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것을 예수님은 ‘탐욕’의 예로 이야기하 십니다. 오늘은 한가위입니다. “더도 덜도 말 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한가위 는 가장 풍성한 계절의 명절입니다. 돌 아가신 조상들을 기억하고, 고향을 찾 고 또 가족들과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것은 명절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풍 성함을 함께 나누고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의 눈이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면, 우리 이웃들의 어려움 역시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 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우리나라에는 한가위가 있고, 이스라엘에는 ‘초막 절’이라 부르는 추수감사절이 있다. 초막절은 유다력 으로 티시레이 달 15일부터 이레 동안 지낸다. 음력을 따르므로 해마다 날짜가 바뀌지만, 올해는 우리 한 가위와 얼추 겹친다. 9월 27일 저녁부터 10월 4일 저 녁까지다. 명절이 저녁에 시작되는 이유는, 유다인들 이 하루의 시작을 해가 진 뒤부터로 해석해온 까닭이 다(저녁이 아침보다 먼저 나오는 창세 1,5.8.13 등을 참조하시라). 우리나라에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 이 있듯이, 한해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초막절은 예부 터 이스라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절기였다(레위 23,40; 신명 16,14). 초막절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유랑 하는 동안 초막을 짓고 살았던 데에서 유래했다(레 위 23,43). 그때 하느님이 구름과 불기둥으로 어떻 게 백성을 보호하셨는지 영원토록 기억하기 위해서 다. 고대 전승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한창 더운 대낮 에 길손 셋을 천막으로 초대해 쉴 곳을 주었기에(창 세 18,1-5), 이스라엘도 뜨거운 광야에서 초막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창세기 라바 48,10).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 살 때 나무가 부족한 곳이라 천막을 쳤겠지만, 가나안 정복 뒤 농경 사 회가 되면서 초막으로 바뀐 듯하다. 밭에 지은 초막 은 바쁜 추수철마다 임시 거처로 사용되곤 했다(이 사 1,8: ‘초막’ 참조). 그러므로 초막절은 광야 유랑 시대에 얽힌 역사적 의미에 농경적 의미가 더해진 명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성경은 초막절을 ‘추수절’ 이라는 이름으로도 소개한다(탈출 23,16). 한 해 동 안 땀 흘린 결실을 거두니(신명 16,13), 온 이스라엘 이 즐거워한 이유도 이해된다. 특히 포도 수확은 흥 겨움과 기쁨이 넘쳤다(판관 9,27 참조). 두고두고 마 실 포도주를 생각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지 않았 겠는가? 성경 시대에 초막절은 모든 히브리 남자들이 예 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순례해야 했던 의 무 축 제였다(탈출 23,14-17 참조). 하지만 지금은 성전이 없으니, 유다인들은 가족 단위로 회당과 집을 오가 며 명절을 지낸다. 집 근처에는 손수 초막을 짓고, 이레 동안 그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유다교 율 법에 의하면, 절기 동안 초막이 집보다 우선적인 거 주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 올 때만 집에서 음 식을 먹을 수 있다. 느헤 8,16의 기록에 따라, 보통 마당이나 발코니, 옥상 등에 짓는다(“백성은 나가서 나뭇가지들을 꺾어다가 저마다 제집 옥상이나 뜰, 하느님의 집 뜰이나 ‘물 문’ 광장이나 ‘에프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만들었다”). 초막절에는 온 이스라엘 이 모여 주님의 율법을 봉독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 어서(신명 31,10-12), 유다인들은 초막절 뒤 여덟째 날을 ‘심핫 토라’(토라의 기쁨)로 지내왔다. 이날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조금씩 읽어온 모세오경을 마 무리하고, 처음으로 되돌아가 창세기부터 새로 봉 독을 시작하는 날이다. 이런 성경 봉독 관습은 우리 가 미사 때 조금씩 읽는 독서나 복음과 비슷하게 생 각하면 되겠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기후와 관련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초막절도 마찬가지다. 우기가 시작되자마자, 곧 ‘이른 비’(신명 11,14)가 내리는 시즌에 지낸다. 이른 비는 ‘가을비’로서, 새해에 내리는 첫 비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에서는 신년이 가을인 티시레이 달에 시작 한다. 탈출 23,16에도 ‘추수절’이 ‘연말’이라는 말과 함 께 나오듯이, 초막절은 해가 바뀌게 되는 우기와 맞물 리는 절기다. 이때 내리는 비는 건기 동안 굳은 토양 을 열어 파종을 도와준다. 그 뒤 12~2월은 장마철이 고, 3~4월에는 ‘늦은 비’(신명 11,14) 곧 봄비가 내린다. 봄비가 지나가면 건기가 시작되므로, 늦은 비는 그 해 ‘마지막 비’라는 뜻이다(이때는 파스카 축제를 지 낸다. 초막절과 파스카는 한 해의 쌍봉을 이루는 명 절이다). 그러니 예부터 초막절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우기에 내리는 비가 농사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즈카 르야는 누구든 초막절에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경배 하지 않으면, ‘비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즈 카 14,17). 유다인들은 지금도 초막절 뒤 여덟째 날에 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친다. 또한 이천 년 전 예수님 이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왜 ‘목마른 자들은 나에게 오라’고 초대하셨는지 그 배경을 더 쉽 게 이해할 수 있다(요한 7,37).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 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 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명숙(소피아) 이 스 라엘 초막절 유다력 7월 15일부터 일곱 날 동안 즐겨 한가위 추수감사절 등의 명절과 비슷 광야에서 초막지어 생활한 의미 되새겨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 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 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초 막 안에 서 명 절 을 보 내 는 유다인 가정 . 한 해 동안의 결실에 감사하는 기쁨의 절기 풍요로운 이즈르엘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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