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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7일 주일 13 문화 우리는 가끔 현실의 삶에서 영적인 힘을 잃을 때 자 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원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서기도 한 다. 이런 분들을 위해 좋은 장소를 소개하고 싶다. 대구광역시 도심 문화 탐방 코스 가운데 골목투어 5코스에 들어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 사관이다. 모원을 프랑스에 두고 있는 샬트르 성 바오 로 수녀회는 한국에도 서울과 대구에 관구를 두고 있 다. 특히, 초기 영·호남 수도회의 산 역사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이하 ‘대구 수녀원’) 역사관 을 탐방함으로써 순례의 기쁨이 더 충만하게 될 것임 을 확신한다. 올해는 대구에 수녀원이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대구 수녀원은 건물 자체가 문화재이며 역사 와 유물을 통해 초기 대구교구 수도자들의 활동을 살 펴보는 데 도움이 된다. 손때 묻은 유물들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크신 섭리를 깨닫고, 그분과 함께 걸었던 작 지만 큰 의미를 지닌 100년의 시간 여행이 되겠다. 이 여행을 시작하면서 먼저 언급할 대목은 대구교구 신 설과 대구 수녀원 본원 설립 과정이다. 1911년 6월 11일 로마 교황청에서는 조선대목구(단 일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관할로부터 경상도 와 전라도를 분리해 대구교구를 신설하고 제1대 교구 장으로 드망즈 주교를 임명했다. 그리하여 조선의 단 일교구가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분리됐다. 이에 드망 즈 주교는 교구의 제반 시설을 완비하며 복음의 터전 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봉사할 수녀들의 필요성을 절 감했다. 드망즈 주교는 이미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샬트 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을 이곳에도 오게 함이 좋겠다 하여 프랑스 샬트르의 총장 수녀에게 대구 수 녀원 설립을 요청했다. 한편 대구교구 출범 후 드망즈 주교와 로마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인 베이 드 베이야 주교 사이에 대구교구 내 수녀원 설립과 후원에 관한 구체적 협약이 체결돼 드망즈 주교는 1914년 6월 16일 프랑스 샬트르의 총장 수녀에게 수녀원 설립 허 락을 공적으로 요청하면서 그 필요성과 연유, 건축 자금, 기 타 계획에 관한 협약서의 사본을 동봉해 발송했다. 협 약서 내용은 대구 수녀원과 대구교구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기에 다소 길더라도 인용하고자 한다. <존경하올 총장 수녀님, 전교지에 알맞은 수녀원을 설립하여 수녀들을 일하 게 하지 않고서는 저는 마치 발동기 없는 기계와도 같 아서 자신에게 속한 여러 가지의 일을 잘 해낼 수 없 을 것입니다. 15년 전에 부산에서 새둥우리를 마련할 테니 새들을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에 다른 수녀회에서 오고 싶어 했습니다만 이 나라에 이미 오 랫동안 갖은 고통을 감수하며 일해오고 있는 귀 수녀 회에 미쁨(믿음직하게 여기는 마음)을 두기 때문에 이 렇게 청합니다. 도쿄의 관구장 수녀와 서울의 원장 수녀에게 언약 한 대로 대구수녀원 설립에 필요한 수녀를 주시면 그 수녀들이 도착하는 즉시 수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 설이 갖추어진 집과 땅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이 땅 은 대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고 주교관 바로 옆 이라 수녀원 지도신부가 주교관에 유숙할 수도 있고, 또 큰 길이 옆에 없어서 조용하며 조건이 좋습니다. 수 녀원 설계는 위의 두 수녀들의 의견을 따랐지만 수정 할 것이 있으면 고쳐서 보내주십시오. 건축은 편리하 고 견고하며 건강에 도움이 되도록 유의하였고, 앞으 로의 사업 확장을 예견하여 터는 넓게 잡았으며 최선 을 다하겠습니다. 교황청의 허락이 있으면 같은 나라 에서도 두 수련원을 둘 수 있다고 했으니 대구 수녀원 에 수련원 설립도 간청합니다.> 드망즈 주교는 초기 대구교구를 위해 수녀원 설립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했으면 수녀들 없이 사목해야 하 는 자신을 ‘발동기 없는 기계’와 같다고 표현했을까! 드망즈 주교 주도로 현재의 대구 수녀원 본원 건물(대 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4호)이 1915년 10월에 완공됐고 프랑스 수녀 1명과 한국인 수녀 3명이 이곳에 머물며 30 명의 고아들과 함께 첫 사도직을 시작했다. 그리 고 드망 즈 주교는 10년 후에 지금의 역사관 건물인 성당(대구광 역시 유형문화재 제43호)을 신축했다. 사실 두 건물은 어 떤 유물보다 대구 수녀원의 귀중한 자산이다. 본원 건물의 양식은 유럽 중세 시대에 유행한 로마 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을 혼용한 것이다. 처음 지을 때의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 받는다. 특히 옛 성 당인 현재 역사관 건물의 평면구성은 남북이 긴 장방 형이며 출입구는 남쪽의 아케이드를 향해 있다. 규칙 적인 비례에 충실한 르네상스식 외관과 궁륭형 천정 으로 마감한 고딕식 내부공간은 이 건물의 독창적인 양식으로서 대구지역의 천주교 역사와 함께 서구식 종교건축의 변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역사관 관람시간은 매주 화요일~주일 오전 9시~11 시30분, 오후 1시30분~4시까지며 월요일과 공휴일, 성 삼일, 부활대축일 등에는 휴관한다. ※문의 010-2924-2646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 원 역사관 담당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 수녀원 역사관(상) 1996년 알제리에서 트라피스트 수사 7명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되어 잔 인하게 처형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신과 인간’은 알제리에서 평 화의 보루였던 아틀라스수도원이 순교 의 무덤이 되기까지,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수사들의 마지막 여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주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 서”라는 기도로 시작되는 수사들의 평범한 하루일과를 첫 장면으로 삼는 다. 그들의 기도와 노동은 오랫동안 평온하게 짜여진 씨줄과 날줄처럼 마 을공동체와 깊이 연결된 것이었고, 티 비린의 보건소였던 수도원은 사람들 의 몸과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슬람 무장단체의 그리스도 인에 대한 공격과 살인이 무차별적으 로 자행되면서 그들의 표적이 된 수 도원은 존폐를 가르는 위기에 놓인다. 게다가 성탄절 전날 밤 들이닥친 무 장괴한들의 위협에 시달린 수사들은 이제 합리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구할 것인지, 끝까지 남아서 무모한 순교 라도 받아들일 것인지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된다. 영화는 수사들의 이 고통스런 내면 을 전례와 시편기도로 표현하고 점점 조여드는 현실상황과 번갈아 보여주 면서 한 편의 숭고하고 예술적인 수난 극을 완성한다. 다큐멘터리처럼 현장 음으로만 처리된 영화의 끝부분에 처 음으로 들려오는 음악 ‘백조의 호수’를 배경으로 수사들의 미소가 눈물로 변 하는 침묵의 만찬은 십자가의 길에 들 어선 그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명장 면이다. 이 영화를 하나의 순교극 정도로 만 예상했던 나는 이 안에서 또 하나 의 복음서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예 수님의 제자로서, 양떼를 이끄는 목 자로서, 하느님께 봉헌된 자로서 자 신들이 있어야할 곳이 어디인지 공동 체가 함께 식별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괴롭혔던 두려움과 이기심이 신앙과 형제애로 극복되고, 결국 마을의 운 명에 끝까지 함께할 것을 선택한 그 들의 모습에서 이 시대를 동반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 이다.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매 순 간 정직하게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 이고, 그분께서 건네신 희망에 힘입 어 끝까지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낡 고 이기적인 자아의 죽음이 따르는 일이기에 백색순교라 불린다. 이 영화 가 개봉되었을 당시 많은 유럽의 젊 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왔다는 일화 는 유명하다. 이 불의한 세상에서 하 느님의 현존을 묻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그분을 닮은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백색순교의 삶이야말로 그 들이 갈망하는 진실한 증거가 될 것 이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왜 이리 믿음은 쓰라립니까? 초기 대구지역 수도자들 삶 의 모습 한눈에 전종희 수녀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관) 사진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관 제공 영화 ‘신과 인간’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 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 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첫 수녀들의 모습.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드 망즈 주교.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 관에 소장된 드망즈 주교 친필 문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구 성당(현재 역사관) 내부 모습.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 관 내부 전시공간. 영화 ‘ 신과 인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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