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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知- 최고의 지성들이 자연을 부르다 아름다운 고요로 시작해 씁쓸한 반성을 남긴 죽녹원을 뒤로 합니다 . 죽녹원에서 본 기막힌 상처들을 그저 어린 아이들이 만든 치기 어린 장난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곳, 바로 소쇄원으로 향합니다 . 한국 정원의 백미이자 자연에 대한 경외가 담긴 최고의 건축으로 치 는 소쇄원은 소쇄공 양산보가 조영했습니다 . 1519년 기묘사화( 己卯士禍) 로 스승 조광조 가 화를 입어 귀향을 가자 유배지까지 스승을 모셨고, 그해 겨울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사 망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벼슬길을 등졌습니 다 . 그 길로 고향으로 낙향해 은둔 처사가 되 었는데, 그것이 불과 향년 17 세였습니다 . 현량 과에 합격했으나 나이가 어려 관직에 오르지 못했고, 스승의 별세 이후 평생 세상에 나가 지 않았던 그이기에 학문적 성취는 크게 알려 지지 않았습니다 . 단지 면앙정 송순 , 하서 김 인후, 석천 임억령 등과 나눈 교류와 그가 남 긴 소쇄원이 그 자연과 생명에 대한 철학을 엿 보게 할 뿐입니다. 원림(園林 ) 이라는 말을 사 용할 정도로 화려하고 장대한 중국식 정원이 나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맛을 일품으로 치는 일본식 정원과 사뭇 다른 모습에 실망을 표하 는 이들도 있습니다 . 그러나 이는 소쇄원의 참 맛을 미처 다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리가 동동 떠 다니는 작은 개울가 옆으로 대나무가 나그네를 반깁니다 . 절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 길을 지나면 눈부터 시원해지는 계곡을 사 이에 둔 역동적인 풍경이 눈에 듭니다 . 일부러 땅을 파헤치지도, 억지로 평지를 만들지도 않 은 , 자연이 만들어 낸 경사와 곡선에 건축물 이 자연스레 스며듭니다 . 대숲 사이로 난 다리 는 거창한 치장 없이 그저 툭 놓여 있고, 억지 로 물길을 돌리기보다 홈이 파인 나무를 걸쳐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 공중에 뜬 담 벼락 아래로 개울물은 무심히 흐릅니다 . 겨울 북풍을 막기 위해 쌓은 소담한 담에는 ‘애양 단(愛陽壇) ’이라는 이름을 붙여두었습니다 . 따사로운 부모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 거세지 않은 계곡 위에 자리한 광풍각( 狂風 閣 ) 은 손님이 머물던 곳이고 한 단 위에 자리 한 제월당( 霽月堂) 은 주인이 거처하던 곳입니 다 .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는 송나라 시대의 글에서 따왔습니다 . 정원의 주인이 추 구했던 삶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을 터입니다 . 대나무, 매화, 동백, 오동 , 측백, 살구 , 산수유 , 국화가 제 계절을 찾아 향을 뿜었고, 사철 맑 은 기운에 당대의 지성들이 수없이 이곳을 오 갔습니다 . 짓기도 참으로 천천히 지어 양산보 가 20대 후반쯤에 착공하여 40 대 초반 정도 에 완공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 이곳을 둘러싼 돌멩이 하나 , 물길 하나 놀래지 않고 그저 스 며들 듯 이곳에 자리했을 것입니다 . 생명에 칼 을 대어 제 이름을 새기는 이들과 대조되는 느 리고도 깊은 풍경입니다 . Landscape 1 소쇄원 입구 소쇄원 입구의 대나무길은 이곳에 드나들었던 당 대의 문인들이 정원에 당도하기 전 마음을 가다듬 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을 것이다 . Landscape 2 제월당 제월( 霽月) 은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 다 . 정면 3 칸 , 측면 1 칸 규모 팔작지붕의 한식기와 건물로, 주인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 사방이 탁 트인 대청에 앉으면 흘렀던 땀이 한순간 씻겨 나간다. 2 4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