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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 지난해부터 인터넷에는 두 가지 재미있는 ‘짤방 ( 인터넷 게시글에 딸린 사진을 뜻하는 은어 ) ’이 돌아다닌다 . 멍하니 앉아 있는 고양이는 “나는 아 무 생각이 없다 .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 이다”라고 읊조리고 있고 뒤로 벌렁 누운 고양이 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이미 아무것도 안 하 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말한다 . 온갖 패러디를 넘어 광고에 까지 쓰인 이 문구들을 그저 웃고 넘길 것이 아니 라 올 여름 휴가의 모토로 삼아 보아도 좋을 것이 다 .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 고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해 냈다는 일화들은 단순히 ‘이야기 장치’가 아니다 . 실제로 우리의 뇌는 때로 이렇게 모든 것 을 비울 때 엄청난 일들을 해내곤 한다 . 당신에게 필요한 ‘디폴트 모드’ 이러한 명제가 과학적인 증명으로 날개를 단 것 은 2001 년의 일이었다 . 미국의 워싱턴대 의대 마 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 교수가 첨단 영 상 장비를 이용해 뇌를 촬영 , 신선한 결과를 내 놓은 것이다 . 이 논문은 생각이나 계산 , 말 , 판단 등을 할 때만 뇌가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 던 기존의 가설을 뒤집었다 . 우리가 소위 ‘멍하 다’고 말하는 순간 ,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휴 식을 취하는 순간에 특정한 뇌 부위가 활성화되 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 라이클 박사는 뇌가 아무 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이 특정 부위 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 라고 이름 붙였다 . 컴퓨터를 리셋하면 나오는 초기 설정 (Default) 과 같은 이름이 붙여 진 것이다 . 학계에 큰 파란을 일으킨 이 연구 이 후 관련한 수백 편의 논문이 쏟아졌고, 이후 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자아 성찰, 자전적 기 억, 사회성과 감정의 처리 과정 , 창의성을 지원 하는 두뇌 회로인 것으로 확인됐다 . 그리고 무엇 보다 뇌가 평소에 수행해야 하는 각종 명령들을 처리하느라( 사무실의 분위기도 살피고, 보고서 도 써야 하고, 오늘의 점심 메뉴도 궁금해 하는 (!)) 분주해 미처 연결하지 못했던 뇌의 각 부위를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 멍하게 있던 실 험 참가자 그룹이 집중력이 필요한 일에서 더 좋 은 성과를 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주어진 과제 에 대해 맹렬하게 생각하고 덤비다가도 가끔 이 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무아의 상태에 접어들었 을 때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창조의 꽃이 발아한 다는 것이다 . 당신에게는 ‘겨를’이 있습니까 ? 이러한 과학적인 사실이 알려지기 이전부터 일 상으로부터 멀어지는 휴가는 비움과 연관되어 있었다 . 휴가( 休暇) 의 ‘暇’는 우리 말로 ‘겨를’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 다른 일이나 생각으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뜻한다 . 프랑스어 바캉스 (Vacance)는 영어 베케이션(Vacation) 과 함께 라 틴어 바카티오(Vacatio)를 어원으로 한다 . ‘모두 가 휴가를 떠나 도시가 텅 비었다’라는 의미로 만 들어진 단어라고도 하고, ‘일상의 자잘한 찌꺼기 를 비워내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라고도 한다 . 우리의 잠재력을 ‘리셋’할 기회 흔히 스마트한 업무환경으로 직장인들에게는 더 많은 여가 시간이 생겼다고 한다 . 이것은 맞는 말이다 . 불과 20-30년 전만해도 손으로 작성했 던 서류 자료들이 회사 곳곳에는 남아 있다 . 그러 나 이렇게 생긴 시간이 오롯이 삶의 여백이 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잠깐의 짬도 견디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 휴 가지에서도 회사에서 온 메일을 처리하느라 전 전긍긍한다 . 여행지까지는 기계가 안내하는 대 로 단숨에 달려가 ‘좋아요’를 잔뜩 받을 수 있는 볼거리에 집중한다 . 단순히 ‘회사로부터 멀리 떨 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한 번쯤 이번 휴가 계획을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무리 좋은 성 능의 컴퓨터도 파일 정리나 디스크 조각모음 등 을 제때 해주지 않으면 얼마 못 가 ‘버벅’대기 마 련이다 . 세계 어떤 수퍼 컴퓨터도 따라올 수 없는 우수한 정보처리 능력을 가진 우리의 뇌도 마찬 가지다 . ‘멍 때리기 대회’는 해외로 진출해, 올해 중국 베이징에서도 같은 대회가 열렸다 . 바쁜 현대인들을 위한 ‘멍 때리기 대회’가 2014년 서울에서 처음 열렸다 . 세계적인 IT 회사인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조차도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이는 ‘정보 습득’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쓰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디지털 단식’이라고도 한다 .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출처: 조선일보 칼럼 < 김신영, 너는 지치고 나는 중독됐다 . 우리, 잠시 헤어지자> 디지털 디톡스로 비움 + 채움 1 ‘인터넷 휴( 休 ) 요일’을 만들거나 한 시간 정도 ‘디지털과의 이별’을 연습하라 . 2 ‘뭐 하고 시간을 보내나 ?’ 하는 생각을 예방하기 위해 생각의 목표를 설정하라 . 3 ‘디지털 디톡스’를 결심했다면 다음 날 기상한 순간 무엇을 할지 정해두라 . 4 메신저로 수다를 떨고 싶은 욕심이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공책을 ‘임시보관함’ 삼아 생각을 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