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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박사 생가터 유진오(1906~1987)의 본관은 기계(杞溪)이고 호는 현민(玄民)이다. 소설가, 법학자, 교육자, 정치가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제국대학에 수석으로 입학, 사회주의 문학작품과 학술잡지 발간 등 창작에 몰두했다. 이후 보성 전문학교의 법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제헌 국회에 참여하여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으로 헌법을 입안하였다. 법제처장,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후, 1967년에는 신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 당 총재를 역임했다. 1969년 3선 개헌이 통과되자 야당지도자로 정부 비판에 앞장섰다. 현재 생가는 멸실되어 집터만 남아있다. 마을 사람들의 전언(傳言)이나 대지입지 여건상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ㄱ"자형민가(民家)이며 5칸 규모의 동향(東向) 초가집으로 추정된다. 북쪽 담은 흙담이고, 서쪽과 남동쪽담은 싸리담으로 되어 있었으며, 안채의 전면과 대칭 형태였던 대문은 싸리문이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유진오의 일제강점기 일부활동은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에 기록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