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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발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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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水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29일의 오산(烏山) 장날을 이용하여, 김경도(金敬道)·이규선(李圭璇)·유진홍(兪鎭鴻)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5시경 3백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오산 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는데, 일본인 경찰 대목희시(大木喜市)가 출동하여,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던 유진홍과 안낙순(安樂淳)을 강제로 주재소에 연행하였다. 이에 그는 시위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로 가서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김경도와 함께 시위군중을 대표하여 일본 경찰과 담판을 벌여 그들을 석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다시 5백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장 유진렬(劉鎭烈)에게도 같이 참여할 것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해산을 종용하자, 선두에 서서 면사무소 기물을 파괴하였다. 다시 우편소로 가서 이규선과 함께 전화통을 파괴하고 부근의 일본인 주택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이 해 12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8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