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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운 [ 약력 ] 1961년 1월 3일 경북 포항 출생 1976년 광주진흥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연행, 단식투쟁으로 3일 만에 풀려남 1979년 3월 한국신학대학 신학과 입학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에 의해 상무대로 연행, 심한 고초를 당하고 5월 20일에 풀려남 1980년 5월 26일 도청 사수 중 일시 외출.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이 역사를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합니다. 이름 없는 강물에 띄워주시오'라는 일기를 남김 1980년 5월 27일 도청에서 투쟁 중 계엄군에 의해 사망 [ 동지의 삶과 죽음 ] 한국신학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류동운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했다가 연행되었고 상무대에서 5월 22일 석방되었다. 그날은 공수부대가 퇴각한 후였으나 계엄군의 봉쇄로 시외로 피신해 있던 대학생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류동운은 22일 도청으로 들어가 투쟁위원회에 참여했다. 무기반납과 투항을 주장하던 학승수습대책위원회가 해체되고, 끝까지 항쟁해야 한다는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시민투쟁위원회로 재편한 뒤였다. 25일부터 도청 항쟁 지도부는 결사항쟁 체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도청으로 들어간 그는 27일 새벽에 진입한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류동운의 사회참여는 신앙심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군부독재에 의한 민중들의 억압된 현실을 타파하는 것이 곧 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길이었다. 정치.경제적 폭압과 불평등으로부터 민중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는 길은 실천적 참여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이 곧 평등과 평화, 자유임을 믿고 있었던 그의 항쟁참여는 하나님의 참된 복음을 실천하는 몸부림이었다. 한신민주동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