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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나운규감독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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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사 나운규(1901~1937) 호 춘사 함경북도 회령출생 춘사 나운규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선두주자로서 또한 항일 독립투사로서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조국과 영화에 불태웠다. 그는 중동중학 재학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춘사는 우리나라 영화계에 감독, 배우로서 신화적 인물이었다. 그의 행적은 바로 한국 무성영화사 그 자체였으며 부단히 노력하고 실험하는 영화인이었다. 외국 영화를 보고 새로운 기법을 배워 자기 영화에 실험을 했으며 아리랑에 사용한 상징과 비유의 몽타쥬기법은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시도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한국최초의 발성영화를 기획하였으며 마지막 작품 '오봉녀'에서는 새로운 영상미를 창조하기도 하였다. 그의 영화정신은 한마디로 말하여 피압박 민족의 저항정신에서 배태된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작품활동을 한것은 일제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던 시기였던 만큼 그의 항거는 곧 상징된 수법에 의한 것이었다. 춘사 나운규는 풍류의 구현이며, 한류의 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