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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봄은 정말 잔인했다.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세월호. 꽃봉오리같은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으랴. 수많 은 생명을 태운 채 눈앞에서 가라앉는 배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본 국민들은 집단우울증을 앓고 있다. 돈이 되는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평형수를 쏟아버린 세월호는 정의와 양심 같은 귀한 덕목들을 다 잃어버린 우 리 사회의 상징과도 같다.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경제 개발이라는 명분에 휘둘리고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사 람이 사람답게 사는 올바른 세상을 스스로 망가뜨린 것이 다. 6·25 전쟁 후의 폐허와 가난을 기억하는 세대로서 지금 의 발전된 조국이 자랑스러워 말끝마다 “우리나라 좋은 나 라”를 외쳤던 자부심은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부끄러움과 깊은 절망의 수렁에서 그나마 나를 추스르게 한 것은 ‘딸들에게 희망을! 100인 기부릴레이’였다. 릴레이 중반에 충격으로 망연자실하여 손을 놓고 있던 때, 멀리 바다 건너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는 오랜 친구로부터 편지 가 도착했다. 이 친구는 벌써 여러 해 전부터 기부릴레이에 주자로 참여해오고 있는데, 올해는 특히 변호사와 의사인 두 딸에게도 동참을 권유해서 같이 참여하기로 했다는 사 연과 시애틀에 사는 몇몇 여고 동창들의 성금까지 모아서 같이 보내주었다. 한국여성재단 이사이 경 순 은퇴한 남편과 같이 책이 귀한 벽지나 낙도의 청소년들에 게 도서기증 활동을 펼치고 있는 또 다른 친구는 갑작스런 여행을 떠나면서도 기부금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10년 넘게 기부릴레이 이끔이를 맡아 신바람나게 동참을 권유했던 여느 때와는 달리 올해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 았는데도 완주를 하게 된 것은 이처럼 “힘들 때일수록 서 로 나누는 마음이 절실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자진해서 도와준 덕분이다. 릴레이 마지막 날 주자 명단을 정리하며 문득 오래 전에 읽 었던 구상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어둠을 탓하기보다 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그렇다. 저만 살겠다고 수많은 승객들을 저버린 선장과 선 원들을 비난하고, 돈 욕심에 눈이 어두워 위험을 자초한 선박회사 소유주를 욕하고, 관리 감독 임무를 망각했던 관 계부처 공무원들을 추궁하고, 한심한 구조작업을 벌인 무 능한 정부를 질타한다고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릴 수는 없 다. 나부터 우리부터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책임을 절감 하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양심과 정의를 회복하는 일이 지 금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다. 사립문 03 한국여성재단 나눔의 절실함을 알게 해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