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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로의 귀향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한국에 거주하던 적국국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하였다. 앨버트 W. 테일러도 이떄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사우어하우스에 구금되었고, 메리 L. 테일러는 가택연금을 당했다. 구금에서 풀려난 후 테일러 부부는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추방령에 따라 강제로 한국을 떠나야 했다. 앨버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중 1948년 6월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메리는 남편의 유해와 함께 1948년 9월 인천으로 입국하였다. 일제가 테일러 부부를 추방한 지 6년 만이었다. 마음의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항상 바랐던 앨버트는 '양화진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아버지 옆에 묻혔다. 메리는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딜쿠샤를 방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