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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W. 테일러 1875년 미국의 네바다(Nevada)주에서 출생한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는 광산기술자였던 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Heorge Alexander Taylor)의 일을 돕기 위해 1897년에 조선에 입국하였다. 앨버트 W. 테일러는 영국 출신 연극배우였던 메리 린리와 사랑에 빠져 1917년 인도에서 결혼하였다. 앨버트는 한국에서 광산과 '테일러 상회'를 경영하였으며, 1919년 AP통신(Associated Press)의 한국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고종 국장(國葬)과 3.1운동, 제암리학살 사건, 독립운동가의 재판 등을 취재하였다. 1941년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자 1942년 조선총독부는 테일러 부부를 추방하였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던 앨버트는 1948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아내 메리는 늘 한국을 그리워하던 앨버트를 한국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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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L. 테일러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는 1889년 9월 영국 첼트넘(Cheltenham)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결혼 전 이름은 힐다 무아트 빅스(Hilda Mouat-Biggs)로 모험을 좋아하고 독립심이 강했다. 그녀는 부모의 바람으로 프랑스 신부학교에 입학했다가 그 길을 거부하고, 연극배우 '메리 린리(Mary Linley)'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메리는 인도, 홍콩 등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순회공연을 하던 중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앨버트 W. 테일러를 만났다. 둘은 1917년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한국에 입국해 결혼 생활을 시작하였다. 메리는 한국에서도 자신의 특기를 살려 친구들과 함께 연극 공연을 하였고,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한국의 풍경과 한국 사람을 그린 그림을 많이 남겼다. 1948년 앨버트가 사망하자 메리는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남편의 유해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하였다. 미국으로 돌아간 메리는 1982년 캘리포니아 멘도시노(Mendocino)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