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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정세권 집터는 산비탈 42㎡ 크기이고, 토지대장에는 임야로 등록되어 있다. 소유주는 덕명진양 정씨문중이다. 50년대 말 그가 귀향해서 자리 잡았던 공간은 잡초 무성했다. 집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에는 가파른 데다 형국이 좁고 옹색했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216번지 집터 남쪽에는 그가 기부해서 지은 하이공립심상학교 부설 덕명간이학교 (1939.5.1. 개교, 덕명리 190번지) 터였다. 그는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향리 마을에 교지 500평과 건물 신축비를 전액 부담해서 학교를 지었다. 이곳에 있던 서당을 먼저 신교육 기관으로 바꾼 것도 정세권이었다. 1907년, 나이 열아홉 살 때 일이다. 간이학교는 입학생이 늘면서 마을 뒤편으로 한 번, 다시 바닷가 너른 공간으로 옮긴 뒤 이내 농촌 붕괴와 함께 학생이 줄면서 하이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1993년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대략 30년 뒤다. 고향에 내려온 그가 살았던 자취 어느 구석에서도 '건축왕'이나 '집부자'를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은 없었다. 다만 덕명진양정씨 족보에 올라 있기를 정세권은 '33세~56세 서울시내 건축업 건양사 설립 경영 가옥 천여호 건축'이라고 업적으로 기록해놓고 있었다. 마지막 생을 그는 태어난 고향 동네 정씨 재실에서 살다 갔다. 정세권은 수많은 집을 지었으되 스스로는 정작 빈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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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정세권 선생 관련 사적인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247 진양정씨 재실 명덕재 거주지와 구 묘비의 모습을 보시려면 아래 2022년 탐방앨범을 같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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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정씨 재실 명덕재 거주지와 구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