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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얻고 집을 잃다 조선집 짓기, 조선물산운동, 신간회 지원 등을 거쳐 마침내 정세권이 도달한 지점은 조선말(한글)이다. 그는 그저 돈을 잘 벌어서 기부 활동으로 참여한 게 아니라 민족문화 정체성을 재창조하는 기업 생산활동(조선집 건축)으로 생긴 이익을 고스란히 항구적인 가치를 지닌 민족문화 계승과 창달에 바쳤다. 정세권이 개척해간 남다른 경로와 새로운 궤적은 일제 강점시기를 통틀어서 가장 이상적인 민족자본가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조선집을 지어서 번 돈이 곧 조선어학회 뼈대가 되고 살이 되었다는 건 조선집이 곧 조선말이 된 일이다. 말을 바꾸면 북촌은 집으로 지은 한글인 셈이다. 조선집 형태는 실로 한글 자음들과 닮아 있다. 흔히 한옥을 ㄱ자집, ㄷ자 집, ㅁ자 집이라고들 한다. 지붕은 ㅅ자 모양이다. 북촌은 한글이라는 말은 이렇게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