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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역사관 '집집'은 북촌(北村)에 대한 '전통 인식'을 새로 가다듬고자 서울시가 마련한 탐색공간이다. 북촌이 품고 있는 역사, 문화, 일상 등 정체성을 더울 벼리어내고자 하는 뜻이다. 오늘날 북촌은 전통 도시마을 외관을 구경삼는 시각 소비물에 가깝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 탐방객은 대부분 이 한옥촌이 조선시대 경관을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북촌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어떤 의미를 축적해왔는지를 아는 이는 의외로 드물다. 통념과는 달리 일제강점기 경성(京城) 북쪽 북촌 일대에 조선집(도시형한옥) 마을이 본격 등장한 것은 3.1운동 이후였다. 일제 문화통치 전략에 조응하면서 조선집 마을은 점차 영역을 확장을 거듭했다. 서대문에서 북촌, 예화문 일대, 행당동을 잇게 되는 조선집 띠는 이윽고 북악산을 배후로 ㅅ자 형태를 갖추기에 이른다. 이 저지선은 한국인 생활을 일본인 생활과 경계 지음으로써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유지, 발전시키는 거점 구실을 하기에 충분했다. 조선집마을은 일제가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일상 침탈에 맞선 거대한 문화 방파제였던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북촌 변화를 이끌어낸 중심에는 기농(基農) 정세권(鄭稅權, 1888~1965)이 있었다. 3.1운동에 참여했던 정세권은 조선사회 부촌인 북촌 전통한옥을 여러 필지로 쪼개 도시형 한옥으로 다시 구성하여 보통 한국인들을 끌어들였다. 나아가 그는 조선집을 팔아서 재화를 조선말을 지키고 다듬는데 기꺼이 바쳤다. 정세권은 조선어학회 건물을 기부했고 조선말 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이는 조선집, 곧 한옥이 한글이 된 일이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신산스런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다. 요컨대 북촌이 지닌 근대 정체성은 명백히 일제강점기 민족저항문화 유산이라는 뜻이다. 이 민족문화 방파제를 되새겨 더 튼튼히 하고, 또 새로 가꾸어내기 위한 '집집'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