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page


401page

김란사(金蘭史)는 평남 안주(安州) 사람이다. 이화학당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데 앞장 섰다. 그는 이화학당을 거쳐 일본 동경(東京)의 경응의숙(慶應義塾)에서 1년간 유학한 뒤, 1900년 남편 하상기(河相驥)와 함께 다시 미국으로 유학하여 오하이오주 웨슬렌 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여 이화학당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후 이화학당을 중심으로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성경학원(聖經學院)을 설립하여 기독정신 보급과 아울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인도주의가 부상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호소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19년 초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의친왕(義親王)의 밀칙을 받아 북경(北京)으로 건너갔으나 유행병에 감염되어 1919년 3월 10일 북경에서 작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