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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무기노획 청주 양성면 추정리에서 또한 적 10여명 사살과 무기노획 북일면 초정리에서 10여명 사살 이듬해 같은 북일면 세교리에서 5명 사살 문의면 성남리에서 20여명 사살 또다시 초정리에서 적 수송대를 급습 물자및 현금을 탈취하여 주민들에게 분급하는 한편 아군수용에 충당하였으며 내원면 옥화대에서 8명 사살과 무기노획 또 그다음해 청주 전의 본천 평택 여주 홍성 각지에서의 격전 그리고 문경에서의 최대 승첩등 전후 불가승기의 그 전투는 의병전사 사실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다만 죽창 대 총포 또 중과부적의 형세로 도저히 더 전투를 더 지속하기 어렵게 되매 잠시 속리산에 후퇴하여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1936년 6월 22일 고향인 도원리에서 비원을 안은채 서거하고 말았으니 아 슬프다 이것이야말로 장사영웅 누만금의 원통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큰집이 기울어지는데 한개의 나무로는 지탱하지 못함과 같이 아모리 공의 절륜이 용력불타는 충의심이라 할지라도 힘의 부족과 시운의 불리에는 어찌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 빛나는 충혼과 불명의 무훈만이 길이 천추에 남아 많은 사람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또 이 강토의 수호신이 되실것을 확신하며 본회로서 뒤늦게나마 이 자그마한 돌에다가 그 위적을 새기는 바이다. 강한 바람앞에 센 풀을 알고 어지로운때에 충신을 보게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