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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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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장수면 큰길가에 있는 논개 비각은 장수현감 정주석이 세운 비석을 미일전쟁 때에 일본 경찰이 땅에 묻었던 것인데 을유년 팔월 해방 뒤에 장수군민의 힘으로 파서 모신 것이다. 임진왜란 당년 오월 초 초사흗날 서울을 빼앗기고 유월 열 사흗날에는 평양이 떨어졌으니 진주통판 김시민 등의 사수분전 아래 진주성만이 흘연한 호남의 방패가 되었다. 다음해 선조 26년 계사 6월에 6만 왜병이 아연 진주성을 세 겹으로 둘러싸니 창의사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등 삼 장수를 비롯한 결사의거의 장병 육천이 밤낮 여드레 동안을 꼬박 혈투했으나 6월 29일 드디어 진주성은 무너졌다. 순국자의 피에 물들어 흐르는 남강은 불그레하고 한 마리의 개와 닭, 소와 말이 성할 리 없이 학살당한 성민의 죽음으로 고랑과 샘들이 모조리 메워졌다. 날이 새며 적들의 만흥은 더욱 도도하여 촉석루 위에 벌어진 잔치가 한창 난만할 뿐이다. 이때 다락 밑 강 언덕에 외딴 넓적바위 위에 서는 한 사람의 꽃다운 여인 홀로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 만취한 적장 모곡촌(毛谷村) 일설 석종로(石宗老 )가 달려 내려가더니 여인과 더불어 얼싸안고 환장처럼 즐기는 것이었다. 마침내 여인은 적장을 껴안고 떨어지고 만다. 그의 열 손가락은 마디마디 반지를 끼고 있었으니 이 분이 곧 의기 논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