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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문 선생은, 경남 삼가군(三嘉郡) 출신으로 추정된다. 1908년 경남 합천(陜川)·산청(山淸)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했다. 1908년 전반기에 이차봉(李且奉)·이소봉(李小奉, 이차봉의 아우)·김화숙(金華淑)·김찬숙(金贊淑)·김우옥(金羽玉)·김응오(金應五)·장명언(張明彦) 등 삼가 출신 동료 10여 명과 함께 삼가·합천·단성(丹城)·산청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과 일제 관공서 습격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1908년 4월 24일 삼가군 대평면(大平面)에서 신화(新貨) 23원을, 같은 달 28일 합천군의 모처에서 다시 신화 17원, 엽전 8관문 등을, 5월 1일 합천군 모 영수원(領收員) 집에서 엽전 1관(貫) 300문(文)을, 그리고 같은 달 6일 삼가군 문송면 모처에서 엽전 2관문 등을 모집하였다. 또 이들은 산청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주재소를 방화하고 관급품(官給品) 일체를 노획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삼가주재소 일경들에게 1908년 5월 12일 삼가군 감한면(甘閑面)에서 동료 5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일제 군경은 잔여 의병들을 체포하고자 5월 18일 삼가군 고현면(古縣面)으로 이들을 데리고 현지로 출동하였다. 이때 이들을 구하려는 의병들이 일제 군경을 공격하는 틈에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전원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