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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애국지사 소병 유병하 선생의 집을 찾아왔다. 하구 김시현 선생의 고모 중 한 분은 예안의진의 선봉장이셨던 원여 이인화에게 출가하였으며, 또 한 분은 풍산 하회리 유시성에게 출가하였는데 그의 아들은 유병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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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동지 김시현(金始顯)·김지섭(金祉燮)·권정필(權正弼) 등과 함께 조국독립의 방략에 관해 논의하고 일제 기관의 파괴 및 고관의 처단 등 대대적인 독립투쟁을 일의키기로 결의하였다. 1923년 김시현이 상해에서 의열단이 제조한 폭탄 30개를 천진(天津)으로 운반하고 독립운동가를 조사·체포하기 위하여 천진(天津)에 특파된 경기도경찰부의 한인(韓人)경부 황 옥(黃鈺)을 설득하여 동지적 결합을 맺고 폭탄과 전단 수천장을 국내에 반입하여 총독부를 비롯한 일제의 중요기관을 폭파하려고 하였다. 1923년 2월 그는 김시현에게서 무기를 제공받아 동지 유시태(柳時泰) 등과 함께 서울의 부호인 이인희(李麟熙)의 집에서 독립운동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피체되어 동년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6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